안녕하세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그리고 디아블로 3 오픈 초기 '에러 37'을 뚫고 접속해놓고는, 정작 사냥은 안 하고 경매장 새로고침만 누르다 잠들었던 [게이머의 비즈니스 스터디로그] 주인장입니다.

올드 게이머라면 기억하실 겁니다. 디아블로 3 초창기, 우리는 악마를 잡는 '네팔렘'이 아니라, 경매장에서 시세를 검색하는 '되팔렘'이었습니다. 블리자드는 야심 차게 '현금 경매장(Real Money Auction House)'을 도입하며 "게이머들의 거래를 양지로 끌어올리고, 자유 시장 경제를 만들겠다"고 선언했었죠.
하지만 결과는? 게임의 재미는 박살 났고, 인플레이션은 폭발했으며, 결국 블리자드는 스스로 경매장을 폐쇄하는 초강수를 둡니다. 경제학 원론에서는 "완전 경쟁 시장은 효율적이다"라고 가르치지만, 디아블로의 사례는 정반대를 보여줍니다.
오늘은 블리자드가 수수료 수익이라는 막대한 이익을 포기하면서까지 경매장 문을 닫아야 했던 이유, '시장 실패(Market Failure)'와 '게임의 본질'에 대해 경영학적으로 파헤쳐 보겠습니다.
악마가 아니라 '경제'를 잡았다 : 디아블로 경매장 사태로 본 '시장 실패'
1.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 게임을 목졸라 죽이다
아담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시장)"이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배분한다고 했습니다. 블리자드도 이를 믿었습니다. 유저들이 아이템을 자유롭게 사고팔면, 가격이 형성되고 누구나 원하는 장비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하지만 여기서 '효율성의 역설'이 발생합니다.
게임의 본질: 몬스터를 잡아 아이템을 얻는 '과정의 즐거움'.
시장의 본질: 결과물(아이템)을 가장 빠르고 싸게 얻는 '효율성'.
경매장이 너무 효율적인 나머지, 직접 사냥해서 아이템을 얻는 행위가 '비효율적인 바보 짓'이 되어버렸습니다. 10시간 사냥해서 쓰레기 전설템을 먹느니, 1시간 알바해서 현금으로 '만티코어'를 사는 게 낫다는 결론이 나오니까요. 시장의 효율성이 게임의 핵심 가치인 '성취감'을 파괴해버린, 교과서적인 '시장 실패(Market Failure)' 사례입니다.
2. 부정적 외부효과(Negative Externality) : 내가 강해지면 남은 불행해진다
경매장은 단순히 거래소 역할만 한 게 아닙니다. 게임 전체에 '부정적 외부효과'를 뿌렸습니다. 외부효과란 나의 경제 활동이 의도치 않게 제3자에게 피해(또는 이익)를 주는 것을 말합니다.
박탈감의 전염: 옆자리 친구가 현금 10만 원으로 산 무기로 몬스터를 녹이고 다닙니다. 나는 밤새워 사냥했는데 대미지가 박히지도 않습니다. 이때 나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낍니다.
드랍률의 왜곡: 블리자드는 경매장 거래를 전제로 아이템 드랍률을 극악으로 낮게 설정했습니다. 경매장을 안 쓰는 유저(무과금)는 정상적인 플레이가 불가능해졌죠.
결국 "현질 안 하면 호구"라는 분위기가 형성되면서 유저들은 게임을 떠났습니다. 소수의 고래(과금러)가 다수의 유저 경험을 해치는 구조, 이것이 바로 규제 없는 자유 시장의 폐해입니다.

3. 정부(블리자드)의 개입 : 경매장 폐쇄와 'Loot 2.0'
시장 실패가 발생하면 누가 나서야 할까요? 바로 '정부'입니다. 이 세계의 신인 블리자드는 결국 "경매장 폐쇄"라는 강력한 규제 정책을 내놓습니다.
거래 제한(Regulation): 전설 아이템을 거래 불가(계정 귀속)로 만들었습니다. 시장을 아예 없애버린 겁니다.
스마트 드랍(Loot 2.0): 대신 사냥을 하면 내 직업에 맞는 아이템이 잘 나오도록 보상 체계를 뜯어고쳤습니다.
이것은 경영학적으로 '보상 관리(Reward Management)'의 대전환입니다. 보상의 출처를 '타인(시장)'에서 '나의 노력(플레이)'으로 되돌려 놓음으로써, 끊어졌던 '노력-성취의 고리'를 다시 연결한 것입니다. 그 결과 디아블로는 확장팩 <영혼을 거두는 자>에서 기적적으로 부활할 수 있었습니다.
완전한 자유는 정답이 아니다
우리는 흔히 "시장에 맡겨라", "규제는 악이다"라는 말을 듣습니다. 하지만 디아블로 3의 사례는 명확한 교훈을 줍니다. "목적을 잃은 효율성은 독이다."
게임의 목적은 '재미'이고, 이 재미를 지키기 위해서는 때로는 시장의 자유를 제한하는 '착한 규제'가 필요합니다. 만약 블리자드가 수수료 수익에 눈이 멀어 경매장을 유지했다면, 디아블로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망겜이 되었을 겁니다.
현실 경제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환경 오염이나 독과점처럼 시장이 스스로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정부의 적절한 개입이 필요하듯, 게임 생태계에서도 개발사의 현명한 '보이는 손'이 필수적입니다.
이상, 오늘은 경매장이 없어서 직접 파밍한 전설템을 보며 흐뭇해하는(하지만 옵션은 망한) [게이머의 비즈니스 스터디로그]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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