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그리고 지난 주말에도 "한 턴만 더..."를 외치다가 월요일 아침 해를 보고야 만 [게이머의 비즈니스 스터디로그] 주인장입니다.

여러분은 '문명(Civilization)'이라는 게임을 아시나요? 인류 역사를 시뮬레이션하며 석기 시대부터 우주 시대까지 문명을 발전시키는 악마의 게임이죠. 이 게임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바로 '테크 트리(Tech Tree)'입니다. 내가 '도기 제조'를 먼저 배울지, '목축업'을 먼저 배울지에 따라, 훗날 내 문명이 전차 군단을 이끌고 세계를 정복할지, 아니면 야만인에게 털리고 멸망할지가 결정됩니다.
경영대 전공 수업 중 '기술 경영(MOT: Management of Technology)'이라는 과목이 있습니다. 공대생이 아닌 경영대생이 웬 기술이냐고요? 현대 비즈니스에서 기술은 곧 생존이기 때문입니다. 수업을 듣다 보니, 문명의 테크 트리를 타는 과정이 기업의 CTO(최고 기술 경영자)가 밤새워 고민하는 'R&D(연구개발) 전략'과 소름 돋게 똑같더군요.
오늘은 간디가 옥수수와 다이아몬드를 바꾸자고 협박하는... 아니, 평화로운 문명 세계 속 '테크 트리'를 통해, 기업이 수조 원을 들여 기술을 개발하는 이유와 전략적 의사결정의 비밀을 파헤쳐 보겠습니다.
21세기에 기마병으로 탱크를 이길 수 없는 이유 : 문명으로 배우는 기술 경영(MOT)
1. 테크 트리(Tech Tree)는 기업의 '기술 로드맵(Technology Roadmap)'이다
문명에서 우리는 선택을 강요받습니다. "항해술을 찍어서 해상 무역을 할까, 아니면 철제 기술을 찍어서 군대를 키울까?" 자원(과학력)은 한정되어 있기에 모든 기술을 동시에 개발할 수는 없습니다.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미세 공정에 집중할지, AI 로봇 기술에 투자할지 결정하는 과정, 이것이 바로 '기술 로드맵' 수립입니다. 경영학적으로 이를 '핵심 역량(Core Competence)의 선택과 집중'이라고 합니다. 우리 회사의 비전(승리 조건)이 '정복 승리'라면 군사 기술 트리를 타야 하고, '문화 승리'라면 예술 기술 트리를 타야 합니다. 남들이 한다고 무작정 따라 하는 문어발식 R&D는, 결국 이도 저도 아닌 문명이 되어 역사 속으로 사라지는 지름길입니다.
2.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건설과 선도자 우위(First-Mover Advantage)
문명에는 먼저 짓는 사람만 효과를 독점하는 '세계 불가사의(Wonder)' 시스템이 있습니다. 피라미드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을 남보다 한 턴이라도 먼저 완성하면 엄청난 보너스를 얻지만, 늦으면 투자한 생산력은 헛수고가 됩니다. 이는 기술 시장에서의 '선도자 우위(First-Mover Advantage)'와 '승자 독식(Winner takes all)' 구조를 보여줍니다. 특허권이나 표준 기술을 먼저 선점한 기업(화이자, 퀄컴 등)은 막대한 로열티와 시장 지배력을 독점합니다. 하지만 리스크도 큽니다. 불가사의를 짓느라 군사 생산을 소홀히 하면 옆 나라(경쟁사)의 러시에 멸망할 수 있듯이, 기업도 R&D에 올인하다가 당장의 현금 흐름(Cash Cow)이 말라버리는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에 빠질 수 있습니다.

3. 장궁병 vs 탱크 : 기술 수명 주기(Technology Life Cycle)와 파괴적 혁신
문명 게임 후반부에 가장 비참한 상황은, 나는 아직도 활을 쏘는 '장궁병'인데 상대는 '탱크'를 몰고 쳐들어올 때입니다. 아무리 레벨업이 잘 된 정예 궁병이라도 탱크 앞에서는 한 방 컷이죠. 이것은 '기술 수명 주기(Technology Life Cycle)'의 냉혹함을 보여줍니다. 모든 기술은 도입기 → 성장기 → 성숙기 → 쇠퇴기를 거칩니다. 과거의 필름 카메라(코닥)가 아무리 뛰어나도, 디지털 센서 기술(탱크)이 등장하면 시장에서 밀려납니다. 이를 경영학자 클레이튼 크리스텐슨은 '파괴적 혁신(Disruptive Innovation)'이라고 불렀습니다. 경영자는 내 주력 기술이 언제 '장궁병' 신세가 될지 예측하고, 미리 다음 테크(탱크)로 갈아탈 타이밍을 잡아야 합니다.
4. 비커(Science)와 턴 골드(Gold)의 딜레마 : 단기 수익 vs 장기 성장
게임 내내 우리는 고민합니다. 시민들을 광산에 배치해 당장의 '생산력과 골드'를 얻을 것인가, 도서관에 배치해 미래를 위한 '과학력(비커)'을 얻을 것인가. 이는 기업 재무 관리의 영원한 난제인 '단기 수익성 vs 장기 성장성'의 트레이드오프(Trade-off)입니다. 주주들은 당장의 배당금(골드)을 원하지만, 경영자는 미래 먹거리(비커)를 위해 이익을 유보하고 R&D에 재투자해야 합니다. 문명 고수들은 당장은 가난하더라도 과학력에 투자하여 테크 차이를 벌린 뒤, 압도적인 기술 격차로 후반에 승리합니다. 아마존(Amazon)이 창업 초기 10년 넘게 적자를 보면서도 모든 수익을 물류/서버 기술에 투자했던 전략이 바로 현실판 '과학 승리' 빌드업이었던 셈이죠.
혁신하지 않는 문명은 박물관으로 간다
문명 게임의 엔딩 중 가장 멋진 것은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과학 승리'입니다. 흙바닥에서 시작해 별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은 그 자체로 벅찬 감동을 줍니다.
현실의 기업 경영도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100년 전의 1등 기업이 지금은 이름도 없이 사라진 경우가 허다합니다. 그들은 테크 트리를 잘못 탔거나, 혹은 지금의 기술에 안주하여 다음 턴을 준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가장 큰 위험은 위험을 감수하지 않는 것이다." - 마크 저커버그
지금 당장 내 유닛이 강하다고 안심하고 계신가요? 어쩌면 옆 나라 경쟁자는 이미 '맨해튼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끊임없이 연구하고(Next Turn), 기술을 개발하여(Tech Up), 결국엔 자신만의 승리 조건을 달성하는 것. 그것이 게임에서도, 비즈니스에서도, 그리고 우리 인생에서도 승리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상, 오늘 밤에는 기필코 우주선 엔딩을 보겠다고 다짐하는(하지만 야만인에게 털릴 예정인) [게이머의 비즈니스 스터디로그]였습니다. 문명하셨습니다!
우리가 '개돼지'라서 지르는 게 아닙니다: 가챠 중독을 설계한 '스키너의 상자' 비밀
안녕하세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그리고 어제도 '천장'을 찍고 편의점 컵라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는 [게이머의 비즈니스 스터디로그] 주인장입니다. 해방된 KDA 아리를 어떻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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