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연세대학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인, 그리고 아덴 월드 어딘가에서 오늘도 '집행검'을 꿈꾸며 사냥터를 누비는 [게이머의 비즈니스 스터디로그] 주인장입니다.
요즘 과제가 많아서 접속이 힘들긴 하지만요... ㅠ
오늘은 우리 게이머들에게는 너무나 익숙하지만, 경제학 교과서에서는 가장 골치 아픈 존재로 다루어지는 주제를 가져왔습니다. 바로 '리니지의 성혈 독점'과 '카르텔(Cartel) 이론'입니다.

리니지의 '라인'은 왜 OPEC(석유수출국기구)보다 강력할까?
일요일 밤 8시의 전쟁, 그리고 세금 고지서
매주 일요일 저녁 8시가 되면 리니지 월드는 붉은 핏빛으로 물듭니다. 바로 '공성전'이 열리는 시간이죠. 수백, 수천 명의 캐릭터가 성을 차지하기 위해 엉켜 싸우는 장면은 그야말로 장관입니다. 하지만 저 같은 평범한 사용자(a.k.a 중립)들에게 공성전은 단순한 구경거리가 아닙니다. 공성전이 끝나고 성주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당장 내일부터 상점에서 사는 물약값과 주문서 가격에 붙는 '세금(Tax)'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경영관(우리 경영대 건물!)에서 '미시경제학' 수업을 듣는데 교수님께서 "카르텔과 독점 시장의 폐해"에 대해 설명하시더군요. 기업들이 짜고 가격을 올리면 소비자의 나머지가 생산자에게로 이전되고, 사회적 후생 손실(Dead weight Loss)이 발생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순간 제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어? 이거 완전 우리 서버 '성혈 라인' 이야기잖아?"
졸다가 이 생각때문에 다시 집중했다는...;;
몇 개의 거대 혈맹이 연합하여 서버 내의 모든 성을 차지하고, 세율을 최대치로 올려버리는 그 상황. 우리가 게임 속에서 매일 겪는 '통제'와 '세금 폭탄'이 사실은 현실 경제학에서 말하는 가장 강력하고 고전적인 '카르텔(Cartel)'의 모델이었다는 사실, 알고 계셨나요? 오늘은 경영학도의 눈으로 리니지라는 가상 사회의 권력 구조를 해부해 보겠습니다.
아덴 월드를 지배하는 보이지 않는 손, '카르텔'
경제학에서 카르텔(Cartel)이란, 동종 업계의 기업들이 서로 경쟁을 피하고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가격이나 생산량을 협정하는 담합 행위를 말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석유 가격을 조정하는 OPEC이죠. 리니지의 거대 혈맹 연합(이하 '라인')은 이 카르텔의 특성을 소름 돋을 정도로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1) 높은 진입 장벽(Barriers to Entry)과 자연 독점 경제학적으로 독점이나 카르텔이 유지되려면 가장 중요한 전제 조건이 있습니다. 바로 '새로운 경쟁자가 들어오기 힘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리니지에서 성을 차지하려면 막대한 과금력과 인원 통솔력이 필요합니다. 캐릭터 하나의 스펙을 맞추는 데에만 수억 원이 들기도 하죠. 이는 현실 산업에서 초기 투자 비용이 천문학적인 정유 산업이나 통신 산업과 유사합니다. 일반 이용자들이 뭉쳐서 반란을 일으키려 해도, 압도적인 '장비 격차(자본력)'라는 진입 장벽 때문에 기존 기득권(성혈)을 무너뜨리기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이것이 성혈이 오랫동안 권력을 유지하는 기반입니다.
2) 가격 결정권(Price Fixing)과 소비자 잉여의 착취 카르텔의 주목적은 가격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리니지에서 성을 차지한 혈맹은 성세율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경쟁 시장(여러 혈맹이 성을 뺏고 뺏기는 상황)에서는 민심을 얻기 위해 세율을 낮추는 경쟁을 하겠지만, 서버를 통일한 거대 카르텔은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세율을 시스템상 최대치로 설정하죠. 이때 발생하는 막대한 세금 수입은 일반 사용자들(소비자)의 지갑에서 나옵니다. 사용자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물약을 사야 합니다. 경영학에서는 이를 '소비자 잉여가 생산자 잉여로 이전되는 현상'이라고 부릅니다. 즉, 우리의 피 같은 아데나가 성주들의 배를 불리는 셈입니다.
3) 이탈자 처벌과 감시 비용 (Policing the Cartel) 현실의 카르텔은 종종 내부 배신으로 무너집니다. 몰래 생산량을 늘려 혼자 이득을 보려는 구성원이 생기기 때문이죠(게임 이론의 '죄수의 딜레마' 상황). 그래서 카르텔은 배신자를 강력하게 응징해야 유지됩니다. 리니지의 라인은 이 '응징 시스템'이 현실보다 훨씬 잔혹하고 확실합니다. 라인의 지시를 어기거나, 지정된 사냥터 외에서 사냥하는 사용자(혹은 혈맹)는 소위 '척살령'이 내려져 게임 플레이 자체가 불가능해질 때까지 무한 PK(Player Kill)를 당합니다. 이는 카르텔 유지 비용인 동시에, 구성원들의 결속력을 강제로 다지는 공포 경영의 일환입니다.
4) 지대 추구 행위 (Rent-Seeking Behavior) 마지막으로, 성혈들의 행동은 전형적인 '지대 추구 행위'입니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거나 서비스를 개선해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희소한 자원(성, 사냥터)에 대한 배타적 권리를 확보함으로써 이익을 얻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좋은 아이템이 나오는 보스 몬스터를 독점하고, 일반 사용자들의 접근을 막는 '통제' 행위가 대표적입니다. 이는 사회 전체(서버 전체)로 봤을 때는 자원의 효율적 분배를 저해하고, 게임 내 경제 활력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게임사의 개입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역할인가?
지금까지 리니지의 성혈 독점 현상을 카르텔 이론에 비추어 살펴보았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현실 세계에서 독과점의 폐해를 막기 위해 정부(공정거래위원회)가 개입하듯, 게임 내에서도 '정부'의 역할을 하는 게임사(개발사)가 개입한다는 것입니다.
독점이 너무 심해져서 일반 유저들이 게임을 떠나고 서버 경제가 망가질 위기에 처하면, 게임사는 '서버 이전' 이벤트를 열어 새로운 경쟁자(다른 서버의 강한 혈맹)를 유입시키거나, 업데이트를 통해 기존 아이템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방식으로 카르텔을 흔듭니다. 이는 마치 정부가 독점 기업을 규제하거나 시장 개방을 통해 경쟁을 유도하는 정책과 매우 흡사합니다.
결국 리니지라는 가상 세계나 우리가 사는 현실 세계나, "인간의 욕망이 모이는 곳에 시장이 생기고, 그 시장을 지배하려는 세력과 이를 견제하려는 힘의 줄다리기가 계속된다"는 본질은 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오늘 제가 준비한 '게이머의 비즈니스 스터디로그'는 여기까지입니다. 다음번엔 더 흥미로운 주제, '스타크래프트 빌드 오더와 기회비용' 이야기로 찾아오겠습니다. 여러분의 공감과 댓글은 블로그 운영(과제 학점 관리)에 큰 힘이 됩니다!